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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수필🖋️공백(空白)

공백(空白)

 

  시험이 막 끝난 5월 첫 토요일,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만나게 되었다. 각자의 삶에 바빠 긴 시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 제각기 하고 싶은 말을 한가득 쏟아 냈다. 날이 벌써 왜 이렇게 덥냐는 시답잖은 불평부터 시작해 각자의 근황, 시험, 생활기록부나 진로에 대한 고민 등 많은 이야기가 시간조차 잊고 열심히 흘러갔다. 그러던 중에 문득 취미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다. 노래, 사진, 그림 등 각기 다른 활동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돌연 내게도 질문이 돌아왔다.

  “수현아, 너는 아직도 글 써?”

  최근 나는 글쓰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확고했지만, 실력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딴에는 노력했다며 쓴 글도 다시 읽어보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간결함이 간데없어 온점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눈을 감고 싶어질 것 같은 문장이며,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을 터인 의미불명의 단어며, 그런 것들이 한데 어지럽게 뒤섞여 널브러진 듯한 문단들이 ‘읽으라고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의욕을 떨어뜨려 버렸다. 스스로가 느낄 정도면 남들은 오죽할까 싶어 여러 페이지를 찢어다 버린 노트는 날이 갈수록 너덜너덜 예쁘지 않은 모양새가 되어갔다.

  그러한 나름의 걱정을 뒤로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려니 별로 의지가 생기지 않아 나는 그렇다고만 대답하곤 질문을 던졌다. 생각 없이 툭 꺼낸 질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는 것이 뚜렷한 친구들을 보며 모르는 새에 열등감과 부러움이 뒤섞인 감정이 쏟아졌던 것도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노래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질문을 받은 쪽은 노래를 녹음하는 취미를 가진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도 잘 하진 않지만’으로 운을 띄우곤 나름대로 대답해 주었다. 목 관리를 잘 하고, 음정을 지키고, 발음에 신경 쓰고 …. 교과서 같은 대답이었지만, 일부는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꽤 기억에 남았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 아닐까 해. 음정 박자만 완벽하면 된다고들 생각하던데, 기본적으로 숨을 쉬어야 소리가 나오니까. 소절 사이에 적절하게 쉬어주고 호흡하지 않으면 노래 끝날 때까지 음이고 박이고 다 틀릴 수밖에 없지.”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다른 친구에게도 같은 맥락의 질문을 했다. 좋은 운동법, 사진 잘 찍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지만 특별히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기억에 박힌 것이 있다면,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가 말해준 ‘그림 잘 그리는 법’이었다. 더듬어 보면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학원에서 강조하던 게 있는데, 그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여백이래. 아무리 중심을 잘 살려도 여백이 없으면 주제가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나. 나도 전엔 종이가 비면 불안해서 다 채워 넣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걸 남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아. ‘여백의 미’라는 말도 있잖아.”

  유독 그것이 기억에 남았던 건 앞선 ‘노래 잘하는 법’과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노래에서도 선율과 선율 사이의 쉼이, 호흡이라는 텅 빈 간극이 중요하고, 그림에서도 여백이라는 공간이 중요하구나. 그걸 유지하는 건 쉬이 되는 게 아니구나. 그렇구나- 하고 별 무게 없이 흘러가는 생각들을 내버려 두고 있던 찰나, 툭 하고 내게도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럼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성의는 없어 보였겠지만 정말 진심을 담은 대답이었다.

  “나야 모르지.”

 

  세 밤 후인 화요일 자습시간, 시험이라는 고비를 막 넘어선 탓인지 아무리 글씨를 노려봐도 떠오르는 생각은 글에 관한 고민뿐이었다. 도저히 집중하기가 어려워 문제집을 덮고 사물함에 쌓인 책 중 하나를 꺼내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이라는 책이었다. 멍하니 종잇장을 휙휙 넘기며 눈동자를 굴리고 있던 그때, 불현듯 굉장히 깊고 무거운 문장이 마음 한구석에 쿵, 하고 충돌해 왔다. 침묵에 관한 사례들 끝에 작가가 덧붙인 말을 읽을 때였다.

  “침묵이라는 비언어 대화의 힘은 세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게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말을 거둔다. 침묵한다. 그것은 말 사이에 고요의 공간을, 아무것도 자리하지 않은 단어의 공란을 두는 것이다.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덜어냄으로써 더욱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 말의 법칙. 그것은 노래의 호흡과 같았고, 그림의 여백과 같았다. 그제야 나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글 잘 쓰는 법’을 깨달았다. 결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비워냄’이었음을 말이다.

  내가 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적어 내리는 글 한 글자 한 글자가 타인이 살아가는 세상의 하늘빛마저 바꿔놓을 수 있음을 나는 실감한다. 그것을 넘치도록 느껴왔기에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글로써 타인의 마음 한 켠에 다가서고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나’의 세상만을 써왔던 것 같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일러주기에 급급했지, 정작 그 사람이 내 글을 읽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 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저, 마음 한구석 어디 깊은 곳에 꾹꾹 눌러뒀던 경험과 공감과 희망, 그런 것들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해 폭발시키듯 게워낸 어지러운 감정 조각들에 불과했다. 한없이 소중하고 예쁜 감정들인데도 언제나 그 방향은 안타까울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나’에서 ‘타인’에게로. 그래서 나의 글은 숨가빴다. 나의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때때로는 여백의 존재가 한없이 두려웠다. 그 텅 빈 공간이 나의 바닥은 아닐까 무서웠던 듯싶다. 들어찬 글씨들을 보고 있노라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정작 곱씹어보면 어지럽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글자 떼일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오히려 비우는 것이 진정한 실력임을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메워야 한다는 불안, 나를 보여주고 말겠노라는 강박, 어려운 미사여구를 끌어모으게 만드는 욕심을, 공백의 아름다움은 모두 내려놓을 줄 안다. 그래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깨닫기 어렵기에, 쉬이 실천할 수 없기에, 자칫하면 다시금 물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순백색 공간이기에.

  그로부터 꽤 지난 오늘, 여전히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비워야 함을 아는 것과 비울 줄 아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그 사소하고도 진중한 깨달음의 시간이 무색하지 않도록 성의를 다해 나를 사뿐히 내려놓아 볼 작정이다. 말을 줄이고, 글을 줄이고, 나를 줄여서, 내 글을 통해 무언가 따뜻한 감정을 느낄 먼 훗날의 누군가를 위해, 나는 지금 공백의 자리를 열심히 넓혀간다. 내가 마음 한구석에 쌓아 참아낸 나의 이야기만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벗어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왔을 말들이 공백의 세상 위에 빛을 발할 수 있기를 소원하면서.


이 글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행평가로 제출한 수필이다.

어제 책을 읽다가 이 글의 주제를 관통하는 구절을 마주쳐 문득 생각난 김에 옮겨 본다. 🙂✏️

 

이 수필을 썼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아직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내가 아닌 독자를 위한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내게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독자를 위해 나를 비울 줄 아는 좋은 작가가 되어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꾸준히 노력할 것을 또 한 번 약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