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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생각🔖삶은 선택을 통해 분기한다 : <명상록> 12.22을 읽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서.


모든 것이 우리의 판단에 달렸다. 그리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다.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암초를 돌아서 먼 바다로 나아가는 배처럼 잔잔한 물결과 좋은 날씨, 그리고 안전한 항구를 찾을 수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22

'성급하다'는 '성질이 급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급하다'는 정확히 무슨 뜻일까? 사전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어 일을 서두르거나 다그쳐 매우 빠르다', '마음이 참고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을 내는 상태에 있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글로 풀이된 단어의 뜻만 봐도 내 마음이 초조해질 정도로 숨가쁜 단어다.

 

흔히들 성급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유를 가지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유로움, 신중함. 그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오늘날 우리가 이들을 늘상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미덕을 잊은 채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지금의 자신은 지난날 스스로가 해온 선택의 결과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의 모습에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의 성급한 판단 때문일까. 나의 인생을 좌우했던 어릴 적의 판단들을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때의 나는 멋진 꿈을 가지기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다. 다들 그것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의 나는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내오길 수년, 고등학교 때의 나는 수능 직전 돌연 학업을 포기했다. 더 이상 학생으로서의 나의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닥친 일에 대해 즉각 성급한 반응을 해 왔던 나는 그렇게 꿈도, 열정도, 자신도 없는 어른이 되었다.

 

왜 나는 지금껏 그토록 급하게 판단을 내려야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할 선택 투성이인데 말이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경로를 선택하고 변화해온 나는 포기에도 빠른 사람이 되었다. 회한과 반성의 감정조차 빠르게 식어가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 되었다. 왜 조금 더 여유롭지 못했을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아도 실수와 속단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과거만이 떠오를 뿐인데, 나는 도대체 무엇에 쫓기고 있었던 것일까.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유독 기억에 남았던 구절이다. 모든 것이 우리의 판단에 달렸으며 그 판단을 내리는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명상록>의 구절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삶은 각자가 직접 내린 선택을 통해, 명백히, 분기한다.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암초를 돌아서 먼 바다로 나아가는 배처럼 잔잔한 물결과 좋은 날씨, 그리고 안전한 항구를 찾을 수 있다'라는 <명상록>의 비유를 떠올리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껴 본다. 그리고 삶의 틈에서 문득 오늘의 깨달음을 되새길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여유를 가슴속에 남겨 본다. 인생은 길다. 당장 몇 초 후에 어떻게 될 지조차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목표는 저 멀리에 있으니 거기까지의 길은 모두 내 삶이다.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까지의 방향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아무도 나를 좌우할 수 없다. 그것이 내가 가진 자유이자 스스로에 대한 최선의 믿음이기에.

 

그러니 내일은 오늘보다, 모레는 내일보다 한 호흡 길게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조용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