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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생각🔖희망하는 일만을 겪으며 살아가는 방법 : <대화록> 2.14.7을 읽고

에픽테토스의 <대화록> 중에서.


철학자의 임무는 인간의 의지와 일어나는 사건이 조화를 이루도록 전환시키는 것이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것이 없게 되고, 희망하지 않는 것 또한 일어나지 않게 되는 법이지. - 에픽테토스, 대화록, 2.14.7

 

세상엔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하루에 한 번씩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나는 당장 오늘 아침에도 그런 한탄을 했다. 버스를 타려고 큰길로 나가자마자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눈앞을 매정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버스가 오기까지 4분이나 남았다며 나를 안심시키던 어플의 문구는 금세 바뀌어 있었다. '도착 정보 없음.' 나는 앉을 곳도, 가림막도 없이 달랑 표지판만 세워진 버스 정류장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오늘 최고 기온은 35도.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는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갖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불안이나 분노, 우울, 답답함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 말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는 가뜩이나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데, 우리는 그에 대해 일일이 좋지 않은 감정을 표출하느라 스스로를 몇 배는 더 고단하게 만든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것에 순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듯하다.

 

에픽테토스는 철학자가 인간의 의지와 일어나는 사건이 조화를 이루도록 전환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구절을 접한 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사건만이 발생하도록 고심하여 상황을 조성하라는 이야기인가? 그렇지만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움직인다고 한들 우리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까? 위대한 철학자가 남긴 말 치고는 너무 허황된 것이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삶의 불확실성 자체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희망하는 대로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의지가 앞으로의 사건을 결정하게 하지 말고,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새롭게 한다면? 세상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달리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현실이 아닌 자신을 바꾸는 것, 이것이 에픽테토스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철학자의 삶이 아닐까?

 

세상엔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오늘 아침 나의 경험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인데, 오늘 아침의 교통 상황이 내 뜻을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분개할 것은 또 무엇인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순응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편이 훨씬 즐거울 텐데 말이다. 오늘 아침, 나는 에픽테토스가 이야기하는 철학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몇 배로 손해를 봤다. 버스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기분이 상한 채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의 시간을 허투루 보냈고, 맑은 하늘과 푸른 수목으로 아름다웠을 여름 풍경을 감상할 기회 역시 놓쳤다. 남들이 보면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화록>의 구절을 보고 나니 이러한 반성이 단지 과장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철학자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임무에 충실했던 사람들과는 명백히 다른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고 있었을 테니까.

 

철학자의 임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희망하는 일만을 겪으며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의 시각에서는 터무니없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꿈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리고 또 놀랍게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노력만 기울이면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로이 하는 것이다. 세상을 나의 입맛대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세상의 흐름에 올라타 그것을 즐길 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나는 일이 없는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